이곳을 여는 이유
2022년, 정기적으로 다니던 대학병원 로비에 안내 로봇 두 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개월간 그 로봇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충전 공간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2024년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로봇 기업 중 한 곳의 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한 직원에게 제품 디자인팀의 규모를 물었습니다. 그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팀이라기보다는 디자이너 한 분이 개발이 끝난 로봇의 외장을 디자인하는 정도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제가 보지 못한 시간에 누군가는 안내 로봇을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직원 한 사람의 설명만으로 그 회사의 디자인 업무 전체를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 장면이 남긴 의문은 제게 풀고 싶은 숙제가 되었습니다.
어디서나 로봇을 이야기합니다. 섬세한 손동작으로 계란을 집어 옮기고, 험한 지형을 가뿐히 뛰어다니는 로봇들이 우리 미래를 크게 바꿀 것이라고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런 로봇을 일상에서 직접 사용하는 장면은 아직 제게 낯섭니다.
로봇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계속 쓰는 제품이 되기까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리적 제품을 다뤄 온 산업디자이너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산업디자이너가 Physical AI를 만났을 때
저는 15년 차 산업디자이너입니다. 학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해 왔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HRI)을 연구했습니다. 처음의 포부만큼 기술과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귀여운 강아지 로봇 하나를 디자인하고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로봇을 하나의 제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로봇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어떤 로봇을 필요로 하는지, 로봇과 함께 지내는 것을 어떻게 느낄지, 사용성과 사용감은 어떤지가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로봇에 친근함과 애착을 느끼는 데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요즘 이야기하는 Physical AI에서도 이런 질문은 이어집니다. AI가 몸을 갖고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면 크기와 형태, 움직임과 반응이 모두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줍니다. 로봇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망설여진다면 기능을 써 보기도 전에 지나칠 수 있습니다.
시연 영상에서 멋지게 움직이는 로봇도 내 집이나 일터에 들이려면 따져 볼 것이 많습니다. 지금 쓰는 제품보다 나아야 하고, 충분히 안전해야 합니다. 가격만큼 쓸모가 있어야 하며, 관리도 지나치게 번거로워서는 안 됩니다. 생활 공간에 들이는 제품이기에 나의 취향을 반영하는지도 중요합니다. 이처럼, 처음의 신기함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 중 상당수는 산업디자이너에게 익숙한 고민입니다. 사람의 몸과 행동을 살피고, 제품이 놓일 공간을 생각하고,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훈련해 온 일입니다.
다만 그 경험을 로봇에 적용하려면 디자이너 역시 배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뤄 온 제품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하고, 로봇이 감지할 수 있는 정보와 가능한 움직임도 알아야 합니다. 사용하기 불편해 보이는 형태에 기술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알아야 사람에게 필요한 경험을 실현 가능한 디자인으로 제안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대도 있습니다. 저는 산업디자이너가 설 자리가 예전보다 좁아졌다고 느낍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말도 이제는 주로 앱과 디지털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쓰는 제품을 디자인해 온 사람으로서, Physical AI에서 제가 해 온 일의 다음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눌 이야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제품으로서의 Physical AI 디자인을 살펴보려 합니다.
새로운 로봇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로봇을 하나씩 살펴보며, 어떤 필요를 충족하려 했고 실제 사용 경험은 어땠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엔지니어와 마케터, 창업가가 제품을 만들며 했던 고민도 듣고 싶습니다. 제품이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를 알려면 기술과 비용, 사업적인 선택까지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로봇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점과 불편한 점을 묻고 싶습니다.
엔지니어와 창업가는 디자인이 제품의 쓰임에 만드는 차이를, 디자이너는 Physical AI를 다루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일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병원 로비의 그 로봇들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로봇인지 알고 있었을까요. 애초에 그곳에 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요.
로봇을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에서 그런 질문을 하나씩 다뤄 보려 합니다.